시/ 하필숙 , 시평/현달환

▲ 하필숙 시인 ⓒ제주인뉴스

날마다 세상은 내게 안부를 묻고
나는 대답한다
안 먹은 밥도 먹었다 하고
먹은 밥도 먹었다 한다

파도에 떠밀려 온 갯가의 해초처럼
지쳐서 널브러져 있다가도
세상이 내게 안부를 물으면
등 푸른 청어의 펄덕임 같은 대답을 한다

하루에도 수없이 삶을 저울질 해보지만
가치라는 추보다
이유의 추가 더 기우는 이유 때문에
까닭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철커덕거리며 요란하게 지나가 버리는
종착지 모르는 기차가 밤을 달리고
나를 묻어버린 망각의 세월도
속절없이 가고 있다
                      -하필숙의 '밤을 달리는 기차'

밤이 좋은 때가 있었다. 달밝은 밤에 동산위에 앉아 별을 보며 산 너머 산, 섬 너머 섬의 이야기가 궁금해지던 어린 시절엔 밤이 좋은 때가 있었다. 희미한 가로등불도 잠꼬대하면 어두운 골목길을 밝혀준 것은 밝은 달이었다. 그 달을 보면서 꿈을 꾸고 아픔을 잊은 적이 있았다.

지금은 낮이나 밤이나 좋은 시절이 아니다. 나라는 자신을 잊어버리는 망각의 시간이 흐르는 낮과 밤의 혼돈 속에서 '나는 무엇인가'라며 의문의 시간을 가진다.

우리는 가끔 자신을 되돌아보는 때가 있다. 어려운 길을 지나 밤에만 신나게 달리는 기차 속에서, 종착지 모르는 기차가  밤을 달리고/ 나를 잃어버린 망각의 세월도/속절없이 가고 있다/우리는 어릴 적 마음속에 품었던 꿈도 함께 달려가는 것은 아닐까.

자꾸만 기차에 떠밀려 저쪽으로 반대쪽으로만 달려가는 착각을 한다. 언제 기차가 멈출지 모르는 시간, 이런 밤에는 그냥 둥근달이나 실컷 비춰졌으면 좋겠다. [현달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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