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국 추자면 생활환경담당

▲ 김상국 추자면 생활환경담당 ⓒ제주인뉴스

바람이 허락하는 섬 추자 올레길을 걷기로 마음먹고, 핸드폰 시계 알람을 맞춘 후 잠자리에 일찍 들었다. 설레임 때문일까? 새벽에 두 번이나 잠에서 깨어 시간을 확인하고 다시 잠을 청하기를 두 번... 곤하게 자고 있는 나를 깨우는 알람이 시끄럽게 새벽을 일으켜 세웠다.

미리 준비해 두었던 삼다수와 사과 두 조각, 쿠키 2개를 챙겨 가방에 넣고 추자 올레길 출발 장소인 면사무소로 발길을 옮겼다. 날씨가 많이 풀렸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아침에는 바람이 불어서 쌀쌀한 기운이 몸을 감싼다. 대서리 사무소 옆 골목길로 들어선 후 영흥리 순효각을 거쳐 박씨 처사각으로 발길을 옮겼다.

골목길을 걷는데 주민들이 한 두명 보여 눈인사를 하고 지나갔다. 추자 골목길은 내가 살던 고향집 골목길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폭이 좁아 겨우 차 한 대가 지나다닐 정도다. 바람이 세차고 일년 내내 불어 이정도만 허락을 하였으리라!

박씨 처사각 입구에 들어설 때 맨마지막에 있는 집에서 할머니가 배추를 절이면서 물을 버리고 있었는데, 내가 잠시 발길을 멈추자 아주 익숙한 듯 다정한 목소리로 “지나가시오”라고 말했다. 초등학교 다닐 때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온 나에게 어머니가 들려주었던 목소리로 착각할 정도로 다정했다. 박씨 처사각 앞에서 뒤를 돌아보았는데, 눈이 너무나 즐거워 핸드폰으로 경치를 남겨두었다. 멀리 추자면사무소 뒤로 수령섬과 염섬이 보였다.

이제부터는 오르막길이다. 폭이 1미터도 안되고 한쪽은 절벽이어서 조심해서 걷는데 숨이 차올라 삼다수를 한모금 들이키고는 쉬지 않고 큰산 정상까지 올랐다. 망망대해!!! 앞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고 오로지 바다다.

가슴이 뻥 뚤리면서 그동안 몸에 쌓였던 부정한 것들이 한꺼번에 눈녹듯 사라지는 느낌이다. 망망대해를 마음에 그려두고 등대산공원으로 향했다. 황사가 살짝 끼여서 가시거리가 좁았다. 날씨가 좋았다면 멀리 제주도와 눈덮인 한라산이 보였을텐데 정말 아쉬웠다. 등대산공원에 올라 추자교와 섬생이 등 무인도 섬들과 묵리, 예초리 마을을 두루두루 감상했다.

등대산공원을 뒤로하고 추자교를 향해 발길을 재촉했다. 이제부터는 내리막길이다. 조심조심 한발 한발 앞으로 가는데 어르신 두분이 등대산공원을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먼저 인사를 드려야 하는데 타이밍을 놓쳐 먼저 인사를 받고 말았다. 너무 조심조심하다 이런 실수 아닌 실수를...

추자교옆 절개지에 해당화들이 조심스럽게 봄순을 내밀고 있었다. 추운겨울을 견디고 봄바람과 따스한 햇볕을 받아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고, 하루하루가 다르게 봄순을 키워 얼마 지나지 않아 꽃을 피울 것이다. 목책으로 잘 정리된 추자교 올레길을 걸어 돈대산 해맞이길로 접어들었다. 돈대산 해맞이길 입구에는 언제나 차와 오토바이들이 있는데, 모두낚시를 하러온 차량들이다.

돈대산 해맞이길로 정상을 향해 걷다 보니 이름 모를 풀들이 돋아나고 있었고, 그 중에는 소국(?)도 있는 것 같았다. 지금은 작아서 확실하게는 알 수 없지만 이번 달 말쯤이면 알 수 있을 것 같다. 추자 올레길을 야생화가 가득한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면 올레꾼들에게 좋은 추억을 선물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흐뭇했다.

정상으로 가다가 삼거리에서 묵리 마을로 길을 잡아 걷기 시작했다. 마을에 도착하기 전에 대나무숲을 보았는데 돈대산과 어울려 한 폭의 그림처럼 강원도 오지 산골마을이라는 정겨운 기분이 들었다. 마을에 들어서니 목줄이 풀린 개가 나를 보더니 두어 번 짖고 돌아서는데 올레꾼들과 여러 번 마주친 듯 했다.

지난 12월에 다친 무릎인대가 아프다고 아우성이다. 그러고 보니 한번도 쉬지 않고 걸어왔다. 그늘이 지고 의자가 놓여있는 곳에서 잠시 다리쉼을 하면서 체력도 보충할 겸 사과 두 조각과 쿠키 2개를 먹었다. 조금만 더 힘을 내고 가면 신양항이다. 신양항에서 다음을 기약하며 오늘은 이정도로 추자 올레길을 마음에 품고 아쉬운 발길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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