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달환 시인 ⓒ제주인뉴스

아지랑이 피어나는 봄이 오면야
와들거리는 몸뚱이도
스르르 풀리겠네

겨우내 꽁꽁 얼었던 봄처녀의 마음도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던
사나이 마음마저
사르르 눈 녹듯 풀릴 거야

해맑은 봄이 오면야
지난해처럼 어김없이 주름잡던
개나리, 진달래도 피겠다야

어쩜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이름 모를 꽃들도 왕왕 피어나겠지

어지럽게 흩날리는
벚꽃도 야금야금
화사하게 세상에 드러날 것이고

젊은 해가 싱글대는 봄이 오면야
지난 몇 해 보지 못한
노란 벌, 하얀 나비
아따, 갈색 털옷 입은 촉새까지 드나들겠네

겨울을 이겨낸
집 지키던 누런 개들도
잃어버린 눈의 초점을 맞추며
방긋 꼬리를 흔들겠지

웃음기 잃었던
푸르렀던 풀꽃,
활짝 웃는 무명초들이
손을 흔들며
악수하듯 유혹하고
세상은
그렇게 잘도 얽혀 있다네

그러게,
세상은
어느 누가 홀로 피어나는 게 아니잖아
서로가
맞대고
손잡고 어우러져 피어야
진짜로
정말로
꽃을 보고
벌을 보고
새를 보고
선한 개를 본다네

시끌벅적거리는 세상은
늘 춥기만 하다니까
동토凍土에 봄이 오면야
확성기에서 나오는 고성방가보다
얼음골에서
깨어나는 봄의 기지개 소리가 더
우렁참을
느끼고 알고 깨닫고
더운 세상이 있다는 걸
인지하기도 하지

위대함은 큰소리보다
소리 없이 드러나는 웅장함이잖아
계절이 돌고 돌아 다시 제자리에 있지만
눈물이 흐르고 난 후
시간이 지나고 난 후
성숙해진
봄이 오면야
누구는 좋겠다,
고깟
바람마저 심술부리며
체감온도를 낮추는
그런 장난 짓
봄과 겨울의 정체성 없는
여우 짓
미운 짓
누구는 좋겠다고 말하네

오수午睡라도 한잠 자고
깨어나 어슬렁이며
뼈다귀 하나 입에 물고
저기 개한마리 지나다
나를 보더니 멈추었다
눈과 눈이 마주치자
무언가 말을 하네
"왈왈"
나도 “왈왈”
         - 현달환의 '왈왈曰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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