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시집..."총 5부로 나눠 66편의 시가 담겨"

▲ 김병심 시인 ⓒ제주인뉴스

이해와 오해 사이에서 이별해 왔다
사랑이 이별에게 비쳐지는 제물이 되었다
너만은 감쪽같이 비밀에 부치고 싶다
검버섯이 피는 아버지가 이 생을 늘리고 있다
슬픔이 사라진 아버지가 피어난다
너만은 사랑이 아니었으면 한다
너만은 내게서 피어나지 않기로 한다
오래오래 오해하며 나를 이해하지 않기로 한다
이 별은 이별이 너무 쉽다
                     - 「사랑니」

제주문인협회 회원인 시인 김병심이 여덟 번째 시집을 출간했다.

《사랑은 피고 지는 일이라 생각했다》는 김병심 시인의 여덟 번째 시집으로, 총 5부 66편이 담겼다. 시집의 시들은 ‘사랑’에 대한 내면 체험을 시적 형상화했다.

시를 쓰게 하는 힘은 ‘만남’이 아니라 ‘그리움’이다. 짝사랑이 시를 더 잘 쓰게 하고, 더 가슴이 아리게 다가온다. 시집은 누군가를 만나는 이야기가 아닌, 곁에 없는 이를 떠올리며 아껴먹는 사랑의 간절함과 지속성을 토대로 삼았다.

시집에 담은 연서를 읽다보면, 사랑 앞에서 두려움이 없는 영혼의 풍경들을 발견한다. 그곳은 자연의 순환하는 풍경과 시인의 꿈꾸는 풍경들이 존재한다. 온갖 삼라만상을 서로 합치기도 하고 갈라놓기도 한다.

어떤 때는 사춘기 소녀처럼 속이 훤하게 드러나 보여 웃음이 번진다. 사랑을 하면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게 되는 것이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는 체험을 하게 된다. 사랑은 어리거나 나이 듦에 따라 변하는 게 아니라 동일한 세계를 갖게 한다.

제아무리 센 기백을 가진 이라도 사랑하는 대상 앞에서는 발톱과 송곳니를 감추며 연약하고도 얌전한 세계를 보여준다. 여리고 아린 몸살을 앓던 화자의 서툰 문체가 때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의 총화인 꽃을 피워낸다. 김 시인이 찾아낸 세계가 그러하고, 삼라만상을 살리는 서천꽃밭이 그렇다.

이 시집을 읽으면, 신이 주신 축복인 사랑이 모든 감각과 감정을 초월하여 명랑하게 예술로 승화하는 과정들을 볼 수 있어 재미있고, 사랑의 예언서 같아서 흥미롭다.

▲추천서

사랑이란 마치
부드러운 미풍으로 다가왔다가
눈부신 햇살로 감싸주다가
안개 속 미로였다가
휘몰아치는 폭풍우 속이었다가
이 모든 변주들 속에서 문득 눈을 떠보면 역시나
사랑에 도달하는 것은 어려우나 그것을 유지하는 건
더욱 어렵다는 사랑의 요소를 생각게 한다.
                      - Violet gray 김장선

나무와 나무 사이를 본다.
엉클어지고 설켜 있는 대신에
각자의 뿌리만큼 적당한 간격이다.
그곳은 공기와 새로시로 가득 차고
밑발치에는 조릿대가 빽빽하다.
그리고 계절 냄새가 스민 낙엽이 무수히 떨어져 있다.
우리의 간격 안에서
나는 나의 에너지를 펼쳐 보이고
그는 그의 에너지를 구준히 펴고 있다.
그것들은 서로 부딪히지 않게 조심스레 껴안는다.
결마다 스민 사랑이 우리 사이에 무수히 떨어져 있다.
                         -Red fire brick 황문희

깜깜한 밤이 좋다.
그래야 더 빛나는 별을 볼 수 있다.
새벽 한 시 별똥비 보기 위해 새별오름을 갔거나,
새벽 세 시 별을 보기 위해 한담바다를 거닐었거나,
늦은 귀갓길 하늘 가득 박혀 있는 별을 보며 걷다가
넘어져 본 기억이 있는 사람은 모두 사랑을 하는 중이다.
김병심 시인의 사랑은 늘 현재진행형이다.
그래서 감히 바란다.
호호할머니가 될 때까지 사랑하기를
반짝거리는 밤하늘의 별이 되기를
그리하여 사랑하는 사람들의 지표가 되기를
                       -Black Pearl 양민숙

▲저자 소개

제주 사계 출생.
시집 《더이상 처녀는 없다》, 《울내에게》, 《바람곶, 고향》, 《신, 탐라순력도》, 《근친주의, 나비학파》, 《울기 좋은 방》, 《몬스터 싸롱》과 산문집 《돌아와요, 당신이니까》,
동화집 《바다별, 이어도》, 《배또롱 공주》 등이 있다.
김병심 지음 / 140*195 / 118쪽 / 도서출판각 유한회사 / 8,000원 / 2017. 10. 27.

저작권자 © 제주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