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순 시인 ⓒ제주인뉴스

가연佳緣

무우 霧雨 내리는 날
풀무로 지폈다
붉게 타는 산여뀌 그 발아래
서릿발 치는 겨울 지친 호흡으로 살았다
질긴 쑥 줄기 헤치니 그루터기 조금이다
야생의 삶은 결코 아니다
단지 오지 골에서 무야 무양히 살아온
미욱한 시간이었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소실된 내 시간이 산여뀌 뿌리 아래 잠긴다
삼나무숲 뻐꾹새 울음 부리에 물어
초록이 물든다
봄 햇살은 잠기는 무 줄기 당겨 괴운다
접순에서 꽃눈이 오른다
어깨 위에 햇살이 내려앉는다
산여뀌 위로 높게 오르는 연보라 무꽃
봉긋봉긋 피어난다
씨를 품은 내일이 온다
너와 나는 가연佳緣이다

위 시 ‘가연佳緣’을 포함 5편의 시로 동화구연강사로 활동 중인 김정순 씨가 2017 겨울호 <시와정신>에서 ‘신인 발굴 추천’을 받아 시인으로 등단했다.

나태주,김완하,송기한 심사위원은 추천사를 통해 “지난 30회 ‘시와정신’ 신인상에 응모해 이미 바쁜 삶의 일선현장에서 물러나 여유를 누리면서 새로이 시에 몰입하여 상당한 시적인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며 “언어의 조탁을 넘어선 경지에서 자연스레 흘러넘치는 공력을 느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시인으로서의 토양이 단단해 보인다. 생의 깊은 통찰이 내면으로 은은하게 스미어 배어나는 향기와 그 깊이를 알 수도 있다. 모든 것의 조화를 통해서 자연스러움의 경지에 이른 시간이 쌓여 물결의 무늬를 이룬 다채로움도 맛볼 수 있었다”면서 “김정순 시인의 시에 드러나 성과가 만만치 않다”며 앞으로의 문학 활동에 적극적인 후원자로 나서기로 결정하고 (시로)대성하기를 기원했다.

김정순 시인은 추천소감에서 “살면서 존재보다도 부재가 더 많은 저에게 아득히 먼 시의 세계는 늘 동경의 대상이었다”며 “문학이라는 깊은 물가에서 한 발을 적시기 시작했고 서툴지만 헤엄을 조금씩 치는 법을 배우고 있다”고 각오를 밝혔다.

그러면서 “네 살 즈음 아버지를 잃고 우리 자매를 위해 젊은 어머니는 구순이 다 되도록 어머니자리를 지켜줬다”며 삶의 근원이던 어머니께 영광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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