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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일화 칼럼](32)석방
고성한 기자 jejuin@jejuinnews.co.kr | 승인 2017.09.08 21:04

6.25사변을 기준으로 이승만대통령 특사로 모든 포로들이 석방된다는 소문에 천막안이 온통 들뜬 분위기다. 더 힘차게 군가를 부르면서 ‘대한민국~ 만세’하는 소리에 영천이 떠나갈 듯하다.

한꺼번에 석방 시키는게 아니고 심사를 하면서 3일에 걸쳐서 석방을 하게 되었다. 우리들은 소년단이다. 보이스카우트 복장을 갖추어 입고 소년단 중 앞에 나가는 사람은 소북을 치면서 환영할 준비를 하였다. 우리는 고깔모자를 만들어 쓰고 정문옆에 양쪽으로 한 줄씩 100미터 거리를 이어 걸궁을 하면서 환영 인사 및 작별 인사 군가를 불렀다.

정문 밖에서는 나가는 사람의 손을 일일이 잡아 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분들이 이승만 대통령하고 미군 뱀프리트 장군이었다.

첫날은 서로를 쳐다보며 눈물을 흘리며 만세를 부른다. 다음날도 똑같다. 1953년 4월 중순 삼일 째 되는 날 우리들은 보따리를 둘러메고 마지막 영천 포로수용소 정문을 떠나게 되었다. 뒤를 돌아보니 지금까지 고생했던 생각에 눈물이 저절로 난다. 집에까지 가면서 먹을 쌀 1항고(반합 : 아래 사진)와 숟가락 하나가 주어졌다.

▲ 1953년 4월 영천포로수용소에서 받은 항고(반합)와 수저 ⓒ제주인뉴스

이 반합을 받아들고 열차를 타고 다음날 목포에 도착하여 어느 하숙집을 선택하여 그날 밤을 머물러야 했는데, 하숙집 주인은 인민군으로 알고 집을 빌려주지 않았다.

석방증을 보여 줬지만 인정하지 않는다. 주인은 경찰에 나를 신고한 모양이다. 수상한 자가 유숙하고 있으니 조사하여 보라고 한 모양인데 경찰관 두 명이 왔다. “신분증 봅시다.” 포로 석방증을 내 보였다. “어디로 가는 길이요?” “ 제주도로 갑니다.”하니 “알았소. 편히 쉬시오” 라며 주인보고  “이 사람은 아무 이상이 없는 사람이니 방을 빌려주고 재우도록 하시오” 하며 경찰은 가고, 그제야 나는 그 숙소에서 그날 밤 오랜만에 편하게 잠을 잘 수가 있었다.

산은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듯이 이부자리를 펴고 드러누우니 나는 임금이 된 기분이다. 지금까지 5년 동안을 먼지 나는 방에서 담요하나 아니면 가마니를 깔고 덮고 하면서 제대로 잠도 못자며 살아 왔으며 그 5년이란 세월을 생각하니 내일은 집에 가서 부모형제들과 마을친지 그리고 친구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까 잠을 이룰 수가 없었고 마음은 벌써 고향에 가 있었다.

식사는 수용소에서 사용하던 항고(반합)에 쌀을 주어 갖고 와서는 목포에서 이 쌀을 주고 저녁과 아침밥으로 교환하여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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